일제 말기 '日 패망' 노래한 악보집 공개
시온산 예수교 장로회 소장 자료…신사 참배·동방요배 조직적 거부"항일운동사의 중요한 사료될 것"
박건한 목사(오른쪽)와 조원경 목사가 일제강점기 경북 청송에서 있었던 '시온산 제국 사건' 당시 '새 노래' 악보를 공개했다. 김진만 기자
일제 말기에 경북 청송군에서 기독교 장로교 교단 전도사, 신도 등이 신사 참배, 동방요배(東方遙拜·일왕이 있는 동쪽을 향해 90도 허리를 굽혀 절하는 것)를 거부하고 일본 패망을 예언하며 '시온산제국'을 선포하고 불렀던 '새 노래' 악보집이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시온산 예수교 장로회 경주교회 박건한 담임목사와 하양무학로교회 조원경 목사는 13일 자신들이 소장해온 '새 노래' 악보집을 공개했다. 새 노래란 이름은 요한계시록 14장 3절에서 유래했다.
조 목사의 새노래 악보집 3권에는 모두 464곡, 박 목사의 악보집에는 70여 곡이 수록돼 있다. 찬양가 등의 곡에 성경을 인용해 가사를 개사해 만들거나 누군가 새롭게 작곡한 곡들도 있다. 조 목사는 "일제 말기 사탄 용의 나라인 일본을 타도하는 방법의 하나로 천년왕국인 시온산제국을 건국해 다스린다는 종말론적 사상과 일본은 패망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의 가사를 담은 찬양곡을 수록한 악보"라고 설명했다.
시온산제국 공동체에서 만들어 불렀던 새 노래는 7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 목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적으로 지목해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일본 패망 예언 및 패전을 기뻐하는 내용으로 찬양곡을 만들어 불렀다는 점은 항일운동사의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온산제국을 건국한 박동기(1907∼1991년) 목사의 넷째 아들인 박 목사는 "시온산 건국공동체는 신사 참배, 동방요배를 '나 이외 다른 신은 섬기지 말라'는 기독교 핵심교리를 저버린 행위로 보고 조직적으로 거부했다"며 "새 노래 악보집에는 이 공동체의 신앙관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 경북 청송에서 있었던 '시온산제국 사건' 당시 '새 노래' 에 실린 악보. 김진만 기자
◆시온산제국 사건이란
일제강점기에 청송군 현서면 수락마을 출신 박동기(1907∼1991년) 전도사를 중심으로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일제의 신사 참배, 동방요배 강요를 조직적으로 거부하고, 1944년 4월 25일 신도들을 규합해 '시온산제국' 건국을 선포한 사건이다. 이들은 국기와 국가도 만들어 공포하고 600여 명의 관리를 임명, 연합군의 상륙 환영을 준비하다가 1945년 5월 21일 경상북도 경찰부에 발각돼 지도자 33명이 체포됐다.
김진만 기자 factk@imaeil.com
'민족 정기 바로 세우기' 代 이은 목회 활동
시온산경주교회 박건한 담임목사…선친은 신사참배 거부 박동기 목사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교회'라는 모토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시온산예수교장로회 경주교회 박건한 목사.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교회.'
고(故) 박동기 목사(1907∼1991년)는 일제강점기에 장로교 전도사로 신사참배와 동방요배(東方遙拜)에 반대하며 해방 때까지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그의 넷째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30년째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시온산예수교장로회 경주교회 박건한(63) 담임목사다.
박 목사는 기독교 복음 전파와 함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정기를 불어넣는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교인은 100명도 채 되지 않지만 가벼운 시대적 트렌드보다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민족정신을 무겁게 전파하는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시온산'이라는 이름을 교회에 붙힌 것도 기독교 초기 정신으로 복음을 전파하자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아픕니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들이 득세했습니다. 선친은 일제강점기 옥고를 치렀을 뿐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에서 나라의 복지 문제, 박정희 정권에서 유신체제 등을 비판하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야 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세상을 주관하지 못하는 우리 역사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계명대에서 신학 학사'석사 과정을 밟은 박 목사는 역사 속에 민족정기가 살아나 맥을 잇고 친일'친미파와 그 후손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고 회개하게 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역사의식을 가지고 창조주를 믿게 하기 위해 올해 5월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면서 쓴 요한계시록 주석'(도서출판 태양)을 출간했다.
이 책의 서평을 쓴 제임스 H. 그레이슨 쉐필드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일제강점기 역사 속에서 꽃핀 한국교회 역사는 인류학자들과 사회학자, 역사학자들에게 중요한 일"이라며 "기독교 초기에 시온산 제국 운동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그들의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하듯 한 민족의 역사를 알아야 진정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고 평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영남일보] 광복 59돌…'시온산제국'을 아시나요 (2004.8.14)
"日 꼭 망한다" 당당히 새나라 組閣
청송 박동기 목사 항일운동 美 SSA문서 발견
1944년 헌법 공포·장관 등 관리 600여명 임명
15명 체포·옥고…광복후엔 치안유지법 '고초'
박동기 목사 부부가 1978년 10월 어느 곳엔가 함께 소풍가서 찍은 것으로, 아들 박건한 목사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생전 사진이다.
독립운동의 암흑기로 알려진 광복 직전의 항일민족운동을 기록한 미국 정보기관 극비문서가 발견돼 한국 근대사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올해 2월 초 미국 전쟁성 산하 SSA(Signal Security Agency·통신보안국)가 1945년 6월11일 조선총독부가 도쿄(東京)의 경찰 총수에게 보낸 첩보 내용을 입수해 만든 극비 문서(Ultra Top Secret) 2건이 발견됐다. 이 문서는 1945년 4~5월에 있었던 청송군의 '시온산 제국' 사건과 같은해 4월29일 일어났던 '함흥형무소 폭동사건'을 담고 있다. 시온산 제국을 건설하고 항일운동에 앞장선 고 박동기 목사의 아들인 박건한 목사(57·경주시 황성동 시온산 예수교 장로교회)를 만나 당시 얘기를 들었다.
[경주] 최근 국사편찬위가 확인한 미국 SSA의 극비 문서에 따르면 '시온산 제국 사건'은 일제말기 일본의 패망과 연합국의 승리를 확신, 이를 전파하며 헌법을 공포하고 내국인들로 장관과 군사령관 등 600여명의 관리를 임명하고, 연합군의 상륙환영을 준비하다 발각돼 15명이 체포된 사건이다.
시온산 제국 사건은 정확히 1944년 4월25일 시작돼 이듬해인 1945년 5월21일 간부들이 일제히 일경에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는 "시온산 제국 사건은 종교 관련 연구에서 언급된 적은 있으나, 문서자료로 이 사실이 확증된 것은 처음"이라며 "두 사건은 일제 말기 극심한 전시동원과 종교탄압 아래서 한국 민중이 일본의 패전을 미리 전망하고 반일운동을 펼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평가하고 있다.
당시 시온산 제국을 이끈 사람은 박동기 목사(청송군 장로교 수락교회·당시 전도사·1991년 작고)였다. 그는 1907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에서 태어나 대구 동산성경학교를 졸업 후 1936년 포항교회로 부임, 당시 일제가 신사참배를 각급 학교를 비롯, 교회에까지 압력을 넣을 때 이를 반대하다 6차례나 경찰서를 드나들었다.
그는 1938년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일제의 강권에 따라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반대자들을 교회에서 축출할 때 이같은 '음녀의 교회'를 나와야 한다는 설교를 시작했고, 수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그의 뜻에 합류했다.
박 목사의 이같은 항일운동은 3·1 운동 당시 청송, 영천 지방의 선봉장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6개월간 옥고를 치른 해창 조병국 의사의 영향이 컸다. 그는 조 의사의 처조카이다.
1945년 8월7일 밤 12시. 그는 조선총독부 특별지시로 청도 유치장에서 신의주로 이감, 교수형을 받도록 돼 있었다. 한국기독교 100년사에는 1945년 8월17일을 기해 우리 종교 지도자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1945년 8월15일. 마침내 광복이 됐고, 다음날인 16일 박동기 당시 전도사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시온산 제국은 광복된 국가에서도 제대로 적응되지 못했다. '해방군'으로 인식돼온 미국에 대한 실망과 국기 개정운동으로 박 목사는 치안유지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그 후 3차례나 옥고를 치르는 불운을 겪기도 한 것이다.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박동기 목사가 1991년 작고했지만 이에 합세했던 신도들과 2세들이 일본 고등계 출신 형사들의 거듭된 핍박을 받은 것도 역사의 아픔이다.
한때는 대공 용의점이 있다며 들이닥친 형사대에 체포된 '시온산 교회' 박동기 목사와 이 교회 장로 대부분이 조사를 받았다. 마침 경주경찰서 고위 간부는 광복전 대구에서 이들을 심문했던 바로 그 형사였던 것이다.
그는 "당시 아버님과 동지들의 항일운동으로 일본 고등계 형사들의 핍박이 엄청났으며, 그 후 남은 가족들의 정신적인 피해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회고하고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혜택은 없었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당시의 희생을 보상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시온산 제국 사건은 기독교계에서 일부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에 문서로 확인됐다"고 말하고, "독립운동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일제 강점기 말에 전시체제에 들어간 상태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하마터면 묻혀질 뻔했던 우리의 근대사 가운데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또 다른 진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밝혀지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 SSA에서 발견된 시온산 제국 관련 극비문서 사본.
[교회연합신문]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굴한 미 전쟁성 통신보안국 극비문서 (2004.3.4)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굴한 미 전쟁성 통신보안국 극비문서 ‘시온산 제국 사건’이란 무엇인가
신사참배강요에 항거한 종교적 항일운동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는 1945년 6월11일 미국 전쟁성 통신보안국(SSA)이 조선총독부로부터 도쿄의 경찰 총수에게 전달된 첩보 내용을 입수해 만든 극비문서(Ultra Top Secret) 2건을 최근 발견했다고 지난 2월27일 밝혔다는 보도가 조선 동아 중앙일보 등에 28일 일제히 실렸다.
이 문서는 1945년 5월에 있었던 경북 청송군의 ‘시온산 제국사건’과 4월29일의 ‘함흥형무소 폭동사건’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가운데 시온산 제국 사건은 기독교 신앙을 통한 항일운동으로 처음엔 ‘성일본(聖逸本)제국’이라 칭하고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제국으로 총리와 각부 장관, 도지사, 군수, 면장 및 각국 대사를 임명하고 미영 연합군의 상륙 환영 준비를 계획한 사건이다.
청송군 장로교 수락교회 박동기 전도사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시온산 제국 사건은 1944년 4월25일에 시작되어 1945년 5월21일 간부들이 일제히 일경에 체포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러나 교회사는 이 사건을 경북노회 친일파 목회자들의 보고만을 토대로 ‘이단 운동’으로 치부했으나, 풀빛목회(발행인 강춘오)가 1985년 3월호에 이를 본격적으로 발굴 보도함으로써 종교적 항인일운동으로 재조명한바 있다.
1907년 청송군 현서면 수락동에서 태어난 박동기는 일찌기 기독교를 받아들여 대구동산성경학교를 졸업한 후 1936년 포항교회 전도사로 부임했으나 당시는 신사참배가 각급 학교뿐 아니라, 교회까지도 압력을 가해 올 때여서 박동기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경찰서를 6회나 드나들면서 수난을 겪었다.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가 일제의 강권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반대자들을 교회에서 축출할 때 박동기는 고향이 가까운 도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 그가 전혀 새로운 사명을 느끼게끔 만든 도동 매산의 ‘십자가 영광 사건’의 신비체험은 신사참배 반대에 머물렀던 박동기를 종교적 항일운동가로 변신시켰다.
1942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대한민족의 말살정책으로 신시참배와 동방요배 강요가 극에 달했다. 당시 일제의 강요는 교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하는 ‘음녀의 교회’를 나와야 구원을 받는다는 그의 설교에 당시 목사, 장로들이 합류했다. 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이 성일본제국이라고 불리운 시온산제국이다. 성일본(聖逸本)이란 사단의 제국인 히틀러의 독일과 가짜 제국인 일본의 국체(國體)를 빼앗아 상제(上帝)이신 하나님의 통치아래 둔 나라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들은 전권총리 채병하(蔡秉夏·사랑)를 비롯 내무대신 정운권(鄭雲權·희락), 농무대신 정운훈(鄭雲薰·평화), 외무대신 양호우(梁昊雨·인내), 사법대신 신현길(申鉉吉·자비), 문법대신 조기철(曺基哲·양선), 대장대신 곽기생(郭己生·충성), 일본총독 황유하(黃維河·온유), 육해공군사령장관 정두수(鄭斗秀·절제) 등을 임명 성경의 아홉가지 열매를 상징하여 내각을 구성하고, 국가(國歌)와 국기(國旗)도 제정했다. 시온산제국 정치기구의 조직요원만 30만7360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그렇다고 총칼을 들고 싸운 것은 아니다. 이는 순전히 군국주의 일제의 강압에 맞서는 영적 전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일제 타도를 부르짖었던 박동기의 사회적 영향은 3·1운동 당시 청송 영천 지방의 선본장이였고, 서대문행무소에서 3년6개개월의 옥고를 치른 해창(海昌)조병국 의사의 영향이 컸다. 박동기는 조병국 의사의 처조카로서 7년간 그의 문하생으로 교육을 받았다.
해방후 시온산 제국은 ‘시온산장로교회’로 개명되고, 1948년 국기 개정운동으로 박동기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3차의 옥고를 더 치렀다. 시온산제국이 제정해 부른 국가 및 군가, 그들은 새노래란 이름으로 500여곡의 찬송가를 만들었다.
출처 : 교회연합신문 / http://www.ecumenicalpress.co.kr
[한겨례신문] 시온산 제국·함흥형무소 사건 진상 확인 (2004.2.27)
1945년 4~5월 일제패망 예견 독립준비·폭동 일으켰다 실패 /시온산 제국·함흥형무소 사건 진상 확인
미국 첩보문서 첫 공개
1945년 4~5월 사이에 일제의 패망을 미리 예견하고 독립을 준비하거나 폭동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사건을 기록한 미국 첩보문서가 공개됐다.
국사편찬위원회는 45년 6월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경찰총수인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 첩보보고를 감청한 미국 전쟁성 산하 통신보안국의 극비문서를 입수해 27일 공개했다. 국사편찬위가 이달 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수집한 문서 중 일부인 이 자료는 45년 4월 함흥형무소 폭동사건과 같은 해 5월 경북 청송군의 ‘시온산 제국’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시온산 제국 사건은 개신교 장로교 계통의 종교단체인 ‘시온산 제국’이 일본의 패배와 연합국의 필연적 승리를 전파하면서 독립을 선언하고 (해방된 나라의) 헌법을 공포하며 장관·군사령관·주 일본 조선총독 등 600여명의 관리를 임명하고 연합군의 상륙환영을 준비하다 발각돼 15명의 관련자들이 일제 당국에 체포된 사건이다.
또 함흥형무소 사건은 함흥형무소에 구금돼 있던 1000여명의 재소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9명의 간수를 살해하고 구치소에 불을 지른 뒤 ‘조선독립’을 외치다 진압된 사건이다.
국사편찬위는 “시온산 제국 사건은 종교 관련 연구에서 언급된 적은 있으나 문서자료로 이 사실이 확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함흥형무소 사건도 일제말기의 전형적인 항일민족운동이었음에도 그동안 학계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았으나 미국 정보당국 문서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며 “두 사건은 일제 말기 극심한 전시동원과 종교탄압 아래서 한국 민중이 일본의 패전을 전망하고 반일운동을 펼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515817.html#csidxa468cc5f13ca66a824c3ac380308cef
[조선일보] 광복직전 美극비문서 발견 (2004.2.27)
광복직전 美극비문서 발견
유석재 기자
항일운동 기록한 미국측 극비문서 2건 발견
지금까지 구체적 정황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광복 직전의 국내 항일민족운동을 기록한 미국측 문서가 발견됐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는 1945년 6월 11일 미국 전쟁성 산하 통신보안국(SSA·Signal Security Agency)이 조선총독부로부터 도쿄의 경찰 총수에게 전달된 첩보 내용을 입수해 만든 극비문서(Ultra Top Secret) 2건을 최근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문서는 이해 5월에 있었던 경북 청송군의 ‘시온산 제국 사건’과 4월 29일의 ‘함흥형무소 폭동 사건’에 관한 첩보를 담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시온산 제국 사건’은 장로교 계통의 종교단체 ‘시온(Zion)산 성일(聖逸)제국’이 일본의 패배와 연합국의 필연적인 승리를 전파하면서 독립을 선언하고 헌법을 공포하며 장관·군사령관, 주일본 조선총독 등 600명의 관리를 임명하고 연합군의 상륙 환영준비를 계획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15명의 관련자들이 일제 당국에 체포됐다.
‘함흥형무소 폭동 사건’은 함흥형무소에 수감된 1000여명 이상의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켜 9명의 간수를 살해하고 구치소에 방화한 뒤 조선의 독립을 외치다가 진압된 사건이다.
국사편찬위원회측은 “이 두 사건은 ‘암흑기’로 알려졌던 광복 직전에도 일제가 패망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선 사회에 퍼져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 http://news.chosun.com
[중앙일보] 일제말 기독교계 '시온산 제국' 독립선언 헌법공포 등 反日운동 (2004.2.27)
일제말 기독교계 '시온산 제국' 독립선언·헌법공포 등 反日운동
1945년 일제 패망 직전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일부 기독교계가 일본군의 패전을 확신하며 반일(反日)운동을 벌여왔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공개됐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는 27일 "45년 5월 경북 청송군에서 발생한 '시온산 제국'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 자료를 이달 초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찾아냈다"고 밝혔다.
자료는 45년 6월 조선총독부가 도쿄의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 첩보 내용을 미 전쟁성 산하 SSA(Signal Security Agency.적국의 무선통신을 감청하고 암호문서를 해독하던 첩보기관)가 입수, 생산한 극비 문서들이다. 일제의 강압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전쟁에 협력하던 기성 교회에 강하게 반발한 신자들이 종말론적이고 반일적인 교리를 갖고 있던 '시온산 제국'에 가입해 활동하다 관련자 15명이 당국에 체포됐다는 내용이다. 종단의 공식 명칭은 '시온산 성일제국(聖逸帝國)'으로, 장로회 계통 성경학교를 다닌 박동기씨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온산 제국'은 일본 패배.연합군 승리를 예상했으며, 이에 따라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헌법도 공포했다. 또 신자 600여명을 장관.군사령관.국회의장.군수 및 '일본총독'(주일본 조선총독)에 임명했다. 이들은 국가(國歌)를 만들고 연합군 상륙을 환영하기 위해 '시온 왕국기' 1600개도 제작했으나 일제에 발각돼 체포됐다고 문서는 기록했다. 박동기.정운권 등 체포된 이들은 해방 후 석방됐다.
문서는 이 사건을 "신흥종교적 색채가 짙으나 기독교도들의 미국.영국 선호와 반일감정에 의해 촉발됐기 때문에 특히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일본의 패망 후에 대비해 한국 내 우호적 세력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쏟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시온산 제국' 사건은 탁명환씨 등이 관련 연구서를 내기도 했으나 구체적인 문서로 전말이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국사편찬위는 밝혔다. 비록 한 종교단체의 집단행동이기는 하지만 독립.헌법공포.연합군 환영준비 등으로 보아 '대담한 민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사편찬위가 발굴한 자료에는 새롭게 밝혀진 독립운동 관련 문서도 포함돼 있다. 45년 4월 29일 함흥 형무소(교도소)에 구금돼 있던 1천명 이상의 죄수가 폭동을 일으켜 간수 9명을 살해하고 구치소에 불을 지른 뒤 '조선 독립'을 외치다 진압됐다는 내용이다. 이 자료 역시 극비문서로 분류돼 있었다. 국사편찬위는 "함흥 형무소 폭동사건은 일제 말기의 전형적인 항일민족운동"이라며 "그러나 그간 학계에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정보당국 문서에서 이런 사실이 발견되기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출처: 중앙일보] 일제말 기독교계 '시온산 제국' 독립선언·헌법공포 등 反日운동 / https://news.joins.com/article/302420
[동아일보] 일제말 기독교 항일운동 ‘시온산 제국’ 사건 전모기록 공개 (2004.2.27)
일제말 기독교 항일운동 ‘시온산 제국’ 사건 전모기록 공개
일제 탄압이 극심하던 1945년 5월 기독교 계통의 종교단체가 일으켰던 항일운동 ‘시온산 제국’ 사건의 전모를 기록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비밀문서가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李萬烈)에 의해 처음 공개됐다.
4쪽 분량의 이 문서에는 일제의 붕괴와 연합군의 승리를 확신한 ‘시온산 제국’이 한반도의 독립을 선언하고 장관, 군사령관, 일본 총독(주일본 조선총독) 등 약 600명의 관리를 임명한 뒤 연합군 상륙을 환영하는 준비를 도모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 문서는 1945년 6월 11일 미국 전쟁성 산하 통신보안국(SSA)이 조선총독부에서 도쿄의 경찰 총수에게 보낸 첩보내용을 포착해 정리한 것으로 국사편찬위원회가 2001년부터 5년 계획으로 추진 중인 해외소재 한국사 자료 수집 과정에서 입수됐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시온산 제국’ 사건은 기독교계에서 일부 알려져 있었으나 문서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독립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던 일제강점기 말 전시체제에서 일어난 항일운동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45년 4월 29일 ‘함흥형무소 폭동 사건’에 관한 SSA의 비밀문서도 공개했다. 이 사건은 함흥형무소 죄수 1000여명이 간수를 살해하고 조선의 독립을 외치다 진압된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출처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40227/8034314/1
[연합뉴스] 일제말 항일민족운동 기록 美정보기관문서 발견 (2004.2.26)
일제말 항일민족운동 기록 美정보기관문서 발견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 독립운동의 암흑기로 알려진 해방직전의 항일민족운동을 기록한 미국 정보기관 극비문서가 발견됐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는 26일 최근 미국 전쟁성 산하 SSA(Signal Security Agency.통신보안국)가 조선총독부에서 동경의 경찰 총수에게 보낸 첩보 내용을 입수해 만든 극비 문서(Ultra TopSecret) 2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문서는 1945년 5월에 있었던 경상북도 청송군의 '시온산 제국 사건'과 같은해 4월29일 열렸던 '함흥형무소 폭동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각각 표지를 포함해 4쪽과 6쪽 분량이다.
문서는 그간 구체적 정황이 알려지지 않아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해방직전의 항일민족운동으로서 두 사건의 내용에 대한 상세 정보를 담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시온산 제국 사건'은 장로교 계통 종교단체인 시온산 제국이 일본의 패망과 연합국의 승리를 전파하며, 헌법을 공포하고 장관, 군사령관, 일본 총독 등의 관리를 임명한 사건이며, '함흥형무소 폭동 사건'은 1945년 4월 29일 함흥 형무소에 구금돼 있던 1천명 이상의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켜 9명의 간수를 살해하고 구치소에 방화한 후 조선의 독립을 외치자 진압된 사건이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은 "이 자료들은 국내 학계에 사건의 존재만 전해졌던 해방직전 항일민족운동의 구체적인 정보를 담고있다"며 "이는 탄압에 의한 침묵의 시기로 알려진 해방직전에도 일제가 패망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선민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kyunghee@yna.co.kr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577748